2004/11/20 10:19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소쇄원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환벽당까지 가기로 하는 것은 괜치않다.
늦은 봄날이거나 늦은 가을이라면 더욱 좋으리라.

광주에서 무등산을 헐떡이며 오르던 차는 두부 윗면같이 편편한 무등산이 정상이 보일 쯤이면 호젖한 산 길에 있게 된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났다는 점도 좋지만, 어느 쪽으로 갈까를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길은 외줄기, 더 이상 이정표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길은 숲에 가려지거나 언덕 아래로 내려서면서 하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무등산에서 담양으로 가는 길은 산을 닮아 소박하고 빛과 나무와 그림자와 하늘과 언덕이 부드럽다.
내리막이 끝나고 폭이 좁은 들이 시작하는 즈음에 여울마저 흐름을 잊은 채 서버린다. 자미탄 혹은 광주천이라는 개울은 내리막 즈음에서 광주호와 마주한다.

거기에 환벽당이 있다.
환벽당을 올라 개울과 들을 보며 소쇄원에 가지 말자고 한다. 아니 눈 내리는 날에나 한번 가 볼까?
그러나 어느 틈에 소쇄원의 대 그림자를 밟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소쇄원은 숨이 짧은 정원이다.
대숲이 시작하면 끝이 나고, 길은 조만간 담장에 가로막힌다. 그리고 높다란 나무와 산들로 해서 시야는 좁다. 그래서 소쇄원이라는 의미가 없지만 멋들어진 이름에 값하지 못하는 정원이다.
정원의 형태는 가운데 작은 폭포를 중심으로 설치되어 편안함을 상실하고 위태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정원 전체가 빛이 적고 음영 속에 내려앉아 음울하고 호연지기를 키우기에는 부적당하다.
왜 이 곳이 조선의 별서 중 최고인 지를 아직 모르겠다.

다시 되돌아 나와 담양으로 이어지는 들을 보자 가슴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그래 소쇄원은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좋다.

2004/11/20 10:19에 旅인...face
2004/11/20 10:19 2004/11/2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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