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1 10:52 : 언덕 위의 고물 書店

참으로 오래간만에 황석영씨의 소설을 읽었다.

처음으로 그의 소설을 만난 때는 1974년이었다. 중학교 때 집의 마흔 몇권짜리 한국문학전집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그때 만 해도 그는 신예작가였던 셈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한국문학을 거의 끝내고, 외국소설 쪽으로 방향을 옮겨가고 있었다.

1974년 겨울방학에 시작되던 무렵, 황석영의 중단편 모음집 <객지>를 만났다.

객지를 야금야금 읽었다. 하루에 중편이나 단편, 한편씩 읽었다.

그리고 유신의 엄동 아래, 우리나라가 몹시도 을씬년스럽다는 것을 가까스로 알았다.

그 책을 읽었던 겨울방학은 <삼포 가는 길>처럼 유독 추웠다.

그 후 그의 소설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리고 이철용인가 하는 사람의 이야기인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그의 소설 읽기를 마쳤다.

그의 소설은 자연주의를 지향했고, 르뽀문학과 같은 향취를 지니고 있었다. 빈민의 삶과 교착된 월남전선의 한계 상황 속에서도 황석영의 글은 늘 서정적이었고 그만큼 문학적이었다.

그러나 <꼬방동네 사람들>을 읽고, 그가 문학적 서정을 포기하고 르뽀를 지향한 것이 아닐까 하고 더 이상 황석영씨의 소설 읽기를 포기했다.

그의 글 읽기를 마친 후,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들어섰고, 광주항쟁이 일어났고 동유럽의 장벽이 허물어졌으며, 장길산은 여전히 쓰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읽은 황석영의 글은 <삼국지>를 번역한 것이 다였다.

그리고 80년대, 90년대를 접고. 2008년 어제, <바리데기>를 읽었다.

그동안 그의 <오래된 정원>을 읽고는 싶었다.

바리데기는 70년대의 짧은 체험 현장의 치열한 울림은 없다. 장대하고 서사적인 곡조였다. 한 가족이 뿔뿔히 흩어지고 죽어가고, 바리데기 자신이 중국을 지나 영국에 까지 이르는 그 지옥과 같은 시간들이, 저 세상 속의 생명수를 찾아가는 처참한 시간들과 겹쳐지면서, 과거의 아픔으로 응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 속에 이개지면서 죽음의 세상인 서천으로 서천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제 지방공항에서 책을 사서 두시간 만에 책 읽기를 마쳤다. 예전의 그의 글을 읽던 속도에 비하여 폭발적인 스피드로 읽었지만, 그의 글의 폭은 넓고 유역이 광대해서, 이제 늙은 대가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보다 나는 그의 오래된 글들이 좋다.

참고> 바리데기

2008/06/21 10:52에 旅인...face
2008/06/21 10:52 2008/06/2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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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절망과 공포를 뛰어넘는 용서와 사랑 "바리데기" Tracked from Ordinary, but Special. 2009/10/01 15:54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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