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6 08:52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북회귀선 위에 머물던 태양이 마카오의 포석 위로 기울어가던 오후 네시쯤, 그는 8월의 열기를 감내하기로 하고 세나도 광장의 한쪽 구석의 달구어진 계단 위에 앉았다.

전날 저녁에 이 곳에 당도한 그는, 오전 한나절 동안 홀로 낡은 도시를 배회했다. 도시라고 하지만 작은 이 곳에는 볼 것은 별로 없었다. 이끼에 새카맣게 탄 담벼락을 따라 길을 거닐었고, 아침 이슬이 마르고 도시가 열기에 휩쌓일 즈음에 생폴 성당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골목은 좁고 그늘이 져 어두웠다. 강에서 흘러온 퇴적물이 바위덩이에 엉켜 만들어진 좁아터진 섬에서, 정원을 갖는다는 것은 부유한 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은총이었다. 이 곳을 둘러싼 자연이라고는 대륙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섞인 누런 바닷물과 그 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다였다. 길거리에서 볼 것이라곤 식민지시대에 회벽으로 지어진 건물과 야자수나 파초, 벵갈용수의 그늘 밖에 없었다. 건물들은 아이보리라고 하기에는 노란색이 더들어갔거나 약간 빠진 색으로 회칠되어 있어, 외인부대의 사령부와 병영이 늘어선 느낌이었다.

온통 그늘에 뒤덮힌 집들의 문틈으로 짜디짠 양념냄새가 흘러나왔다. 문들은 굳게 닫혀져 있어서 주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는 없었다. 50만의 주민이 사는 황톳빛의 척박한 섬 위로 도박과 관광을 위하여 외지인이 덮쳐드는 이 곳은, 감당하기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자연이란 사치에 불과한 이들이 맞이하는 쾌락이란 인공적인 것들, 돈벌기나 도박과 같은 오락 아니면 메마른 영혼을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 안식을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 저녁이 오고 관광객들이 광장이나 호텔로 돌아간 시간, 굳게 닫혀져 있던 낡은 문들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어른 아이할 것없이 나와 잡담을 하거나 장난으로 골목은 활기를 되찾을 것이다.

그는 몇개의 골목을 기웃거린 끝에,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성당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성당은 언덕과 높은 계단 위에 성채처럼 하늘을 가리며 불안하게 서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 석주와 박공, 그리고 조각상들로 돋을 새김이 된 벽의 전면에 난 문을 지났다. 문을 지나자 그늘에 찌들은 천장과 바닥에 깔린 침묵, 신도들을 위한 긴 의자나 성모상이나 십자가 대신 텅빈 공간이 하늘을 향하여 열려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과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는 오목한 공간 속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의 애원과 갈구가 깃들었던 곳이자, 영혼의 분비물들이 높다란 성소의 그늘 아래 머물던 그곳에서, 그가 맞이한 것은 폐허 위를 채운 새들의 지저귐과 높히 자란 나무의 녹음,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었다. 성당의 그늘과 묵송 그리고 궁륭을 울리던 성가 속에 차곡차곡 쌓여 무겁고 끈끈한 갈구가, 인간을 짖눌렀던 영혼이라는 것의 무게가, 폐허 위에 내려앉는 뜨거운 햇빛에 바싹 말라 바람에 흐트러진 것 같은 아늑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것이야말로 폐허가 간직한 관대함이었다.

성스러움은 물론 자신이 깃들어 있는 속된 생활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필요한 것은 대지를 느끼는데 근원적인 것, 약간의 시간과 한줄기의 햇빛, 신선한 공기, 자신의 삶에 대한 갈증이었다.

헐벗은 영혼들이 빛과 공기 속에서 자유를 얻었던 그 날, 성당이 타버린 것은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전면에 벽조차 남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꽃이 피거나, 속된 삶으로 뒤덮혔을 것이었고, 신앙이나 영혼에 대해서 침묵했을 것이다.

그는 섬의 가장 높은 곳인 요새로 올라갔다. 사방을 둘러본 후, 마카오가 내륙에 가늘게 이어진 반도라는 것과 대륙의 눈물과 같은 타이파 섬과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겨우 기억했다. 그는 대륙과 이 도시 사이가 가로막혀 있던 탓에 이 주강 델타의 끄트머리에 이어진 조그만 이 땅을 그만 섬으로 기억하고 말았다.

정오의 태양이 머리 위를 스쳐지나는 것을 눈을 찌푸리고 바라본 후, 언덕을 터덜터덜 내려왔다. 습기는 사라졌지만, 더웠다. 낮은 언덕은 흘러내려 세나토 광장에 다시 그를 토해냈다.

그에겐 베풀어진 것은 지루한 시간과 한낮의 열기였다. 포르투칼 음식점으로 올라가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창 가에 앉아 시간을 들여가며 식사를 했다. 포르투칼산 포도주는 떫은 맛 사이로 은밀한 달콤함을 간직했다. 시간이 남아 광장을 다시 가로질러 이발소에 들어가 대화라곤 하나도 통하지 않는 노인에게 머리를 잘라달라고 했다.

이발소에서 나왔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뚜렷해지자, 금빛으로 서쪽을 물들이는 오후의 느긋한 햇빛 그리고 그림자로 인해서 또렷해지는 건물의 창과 격자들, 물결무늬의 광장 위에 기인 그림자를 드리우고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는 고요한 침묵 속으로 용해되고, 다시 잃어버렸던 열정처럼 다가왔다.

아무런 아쉬움없이 그 하루를 소비하기로 하고, 찬란한 석양에 자신의 얼굴을 맡긴 채, 나른한 몸을 계단 위에 부려놓았고, 낮동안 달구어진 계단의 온기가 자신의 척추를 통하여 가슴까지 번져오르는 것을 환희와 같은 기분으로 맞이했다.

오후의 빛들은 건물의 끝에서 차츰 미미해지며 식어갈 것이고 어둠이 내습을 하여도 또 다른 곳으로 갈 이유는 없으며, 또 다른 하루가 아직도 그에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기적같았다. 가족들은 멀리 서울에 있고, 자신 만이 고독한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 해가 기울고 나면 광장과 거리의 모퉁이에 가로등이 켜질 것이다. 어둠이 매춘부처럼 가슴에 와 안기면, 모르는 사람들의 한가로운 웃음과 남중국을 감싸고 도는 저녁의 훈풍에 휘날리는 도처에서, 외로움에 흠뻑 젖어들수 있으며, 아직도 남은 미지근한 열정에 도취되어 누구에겐가 편지를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광장 한쪽에서 고적대의 트럼펫이 울렸다. 기우는 태양에 새카맣게 타오르다 마지막 푸른 빛으로 멀어져가는 하늘 위로, 비둘기 떼가 푸드득 공기를 찢으며 날아올랐다. 그러자 최초의 시간이거나 종말의 시간을 맞이한 것처럼 지는 해를 그는 바라보았다.

∗ 베이스 : 마카오의 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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