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0 23:38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남해로…

아내가 남해를 보고 싶다 하며 가는 데 몇시간이 걸리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남쪽 바다 말했겠지만, 나는 남해섬을 떠올렸다. "세시간, 많이 걸리면 네시간?"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하고 충청도가 경상도 밑에 있다고 해도 믿을 아내는 "그것 밖에 안걸려?"했다. 다섯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면, 서해나 설악산으로 가자 했을 것이다.

7시 40분쯤 출발한 차가 사천을 지나 창선연육교를 넘을 때, 이미 오후 1시였다. 창선도와 남해도를 잊는 창선교를 지나 지족에서 멸치쌈밥을 먹으며, 인터넷에 오른 맛집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았다. 창선교 부근에는 죽방렴(바다에 V자형으로 심어놓은 대나무 발)을 쳐서 멸치를 잡는 모양으로, 여기의 멸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품질이 좋다는 기장 멸치보다 크다고 한다. 여원이라는 맛집(MBC 어쩌고 저쩌고가 써 있음)에 들어가 멸치쌈밥을 시키니 1인분이 팔천원. 쌈해 먹을 멸치조림은 간이 안들었고, 미역국은 소태며, 쌈조차 풍성하지 못하다. 아내는 "이게 팔천원 짜리예요?"라며 종업원에게 핀잔하듯 말했다.

밥을 먹고 미조포구를 지나, 상주해수욕장을 지났다. 일요일 남쪽 바다의 날씨가 궂을 것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날은 맑았다. 한적한 길 옆으로 내려다 보이는 바다의 물색은 파랗고, 길 위로 은행잎이 반짝이며 떨어졌다. 이쪽에서 저쪽 언덕까지 해안길에는 우리 차만 달리고 있다.

11월의 일요일 오후, 공기는 점차 밀도를 더하여 오후의 햇빛에 금빛이 감돌았다. 해안도로의 아래로 평지가 있는 곳이면 사람들이 서식하고, 바위돌들을 쌓아 담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담 너머로 오동나무며, 동백나무 등이 보였다. 모두들 돈벌러 서울이나 어디로 갔다고 하는데, 아직도 그토록 많은 집과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깃들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홍현을 지나자 가천마을 언덕에는 반뼘짜리 다랭이논이 언덕 위에서 바다까지 계단을 이루고 있다. 언덕에서 보이는 바다는 드넓었다. 언덕에서 내려가자 숙소가 보였다.

숙소가 있는 남면 선구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여수만(광양만)을 건너 돌산도가 보였다. 아내와 함께 몽돌해수욕장이라는 숙소 앞의 바다로 나갔다. 하지만 해수욕장이 아니라, 여수만으로 나서는 쪽배나, 낚시꾼들이 배를 빌려 낚시를 나가는 조그만 포구였다, 제방에 부딪혀 풀이 꺽인 파도만 해변을 두드려, 몽돌들이 구르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사르락 잔돌이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포구인데도 비린내는 나지 않았고, 갈매기도 보이지 않는다.

몇년전 곽재구씨의 포구기행에 매료되어 들렀던 이 섬의 미조포구에 대해서 썼던 기억이 났다. 그때 밤에 포구에 당도했고, 저문 밤바다의 냄새를 맡았다. 아무 냄새도 없었다. 그래서 "밤의 포구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비린내가 없다. 분명 죽은 포구다."라고 썼다.

그러나 이 섬의 포구는 다 그런 모양이다. 아내와 나는 제방에서 돌산도와 남해 사이를 지나가는 화물선과 여수만 위로 내려앉는 오후의 햇빛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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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올라가면서 저녁을 먹을 곳을 찾았지만 없었다.

철이 지나고 주말이 지난 바닷가는 그랬다. 우리가 머문 펜션에도 방들이 비어 있었고, 도로 위로는 간혹 차가 지나는 소리만 들렸다.

할 수 없이 차를 몰고 식당이나 횟집을 찾아나섰지만, 한참을 가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한곳을 찾았는 데, 전복횟집이었다. 회를 뜨는 동안 해가 질 지 모른다고 안절부절하자, 아내는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우리가 있는 곳은 서향이라 노을이 멋질지도 몰라"

아직 섬 위에 햇빛이 남아있어 해가 지려면 일이십분은 남은 것 같아, 횟집에서 한참 더가서 슈퍼에서 소주와 햇반을 사서 숙소를 향했다. 가천의 언덕에서 서쪽을 보자 해는 돌산도 뒤로 내려앉고 있었다. 해는 공해에 흐릿하고 지친 몸짓으로 가라앉는다. 하늘은 아직도 남은 하루의 빛이 은빛으로 밝았고, 구름의 끝자락에 노을 빛이 조금 묻어났다. 그 빛이 너무 미미해서 안타까왔다.

펜션의 앞의 도로 위로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고, 땅거미가 그 위를 덮치기 시작했다.

햇반과 전복회 몇점으로 전복죽을 끓였다. 우리는 소주를 한 잔하며, 창 밖에 내리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반나절 동안 운전을 해서 인지 몰라도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전복회를 오도독 씹으며, 소주를 한잔한 후, 발코니로 나가 저문 바다를 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단 두개 빛나는 데, 건너편 돌산도에 서식하는 집들에서 밝힌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머나먼 밤하늘을 지나온 별빛만 반짝이는 줄 알았는데, 좁은 바다를 넘어 온 불빛이 저리 명멸하리라곤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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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건너편의 불빛을 보자, 그들의 삶이 아득하면서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전복죽을 다 먹고 난 뒤, 아내는 여행와서 먹을 것 찾아 삼만리하긴 처음이지만 그래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바다로 나가보자고 했다.

밤바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내와 함께 자갈이 뭉그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아내는 연신 참 좋다. 다음에 딸아이가 오면 네 식구 모두다 이곳에 오자고 했다.

피곤했는지 열시가 되자 견디다 못해 잠이 들었다.

조조각성증 탓인지 새벽 세시에 깼다. 잠든 아내가 깨지 않도록 화장실에 불을 밝히고 펜션의 컴퓨터로 까페의 글을 보고, 저장된 쿵푸 팬더를 본 후 새벽 다섯시에 다시 낮잠(새벽에 낮잠을 자다니 허~참). 다시 깨니 날이 밝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출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잠. 여덟시가 되어 다시 깨어나 세수를 하고 아홉시에 서울로 향했다.

이순신 아아 이순신

남해의 서안도로를 따라 남해대교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몇번이고 갈리는 길에 서쪽 해안도로를 놓치고 말았다. 그 서쪽 해안도로에 관음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갈림길에서 길을 놓쳐 섬의 내륙, 남해읍을 지나 남해대교를 지나고 말았다.

戊戌(1598)년 11월 19일(양 12월 16일), 510년전 충무공은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에서 관음포로 스미던 적함을 추격하던 중, 적들의 총에 맞아 서거했다고 한다. 공의 마지막 해전에서 4만9천명이 죽거나 수중의 고혼이 되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군들은 철수를 하고 있었다. 히데요시가 죽고, 남해안에는 적들이 먹을 것이 더 이상 없었다. 지리한 전쟁에서 그들은 패전했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적들은 순천만에서 돌산도를 돌아 광양만으로 왔고, 사천의 적들은 경상의 적들을 창선과 사천 사이의 좁은 해로 안으로 불러들여 노량에서 결집, 고국으로 돌아가는 퇴로를 열려고 했다.

나는 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왜 사지인 그 곳에 들어와 뭉쳐야만 했는지? 이순신은 무엇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 남은 인생을 가족들과 함께 하려 했던 왜놈들을, 끝끝내 적의 적으로서 궤멸코자 했던 것인지? 무인의 길은 정녕코 어짐(仁)과 관계가 없는 것인지? 나로서는 차마 이해할 수 없다.

관음포로 달아나던 적들을 쫓아 저들을 진멸하고 저들의 피로 광양의 바다를 물들이라 소리쳤고, 적들의 총에 맞아 노을을 등지고 그는 무너졌다.

김훈은 그의 '칼의 노래'의 마지막을 이렇게 물들이고 있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오늘 내가 넘는 남해대교에서 바라본 노을이 지던 쪽 바다는 가을 햇살로 투명하게 맑고 물비늘로 눈부셨다. 그 날 저녁의 노을과 서로 부딪혀 으깨지는 함선과 바다 위에서 타오르는 연기와 불빛은 하나의 전설이 된냥 그렇게 밝고 쪽빛이었다.

섬 그늘에서...

남쪽바다의 통칭인 아내의 남해에 대하여 내가 남해섬이라는 특정지점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마도 <섬 그늘에서...>라는 글을 쓰고 난 후, 무대인 노량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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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를 넘자 마자 핸들을 꺽었다. 대교 밑에서 대학 2년때 한번 스쳐지났던 마을을 들러, 아잉이 살았던 집을 찾고자 했다. 겨울이면 남해섬의 그림자에 깃들 대교 밑은 횟집들과 거룻배들로 북적댔고, 집들이 언덕 위까지 첩첩이었다. 바다 쪽으로 면한 쪽방과 같은 집은 보이지 않았다. 광양 쪽으로 바다에 면한 제방 위로 가을 햇빛 만 한가했고, 내 기억 속의 풍경은 더 이상 없었다. 아 해풍에 젖어가던 그 집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긴 왜 내려온거야?"
"그냥 뭘 찾아볼 것이 있어서..."

차를 몰아 하동으로 몰았다. 그 길의 어느 지점부터 섬진강이 바라보여야 했다. 하얀 모래톱 위에 댓잎이 푸르른 그림자가 강에 드리우는 협곡 사이로 흐르는 섬진강이 보이기 전에, 고속국도의 IC가 보였다. 다섯시 이전에 서울에 도착해야 한다는 아내의 말 때문에 섬진강 보기를 포기하고, 근처 재첩국 집에 들어가 아침을 먹는다.

집으로…

1박2일의 여행은 고속국도에 오르는 것으로 끝난 셈이다. 진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대진간 고속국도에 오르자 산청, 함양, 안의의 지리산 자락을 거쳐 장수로 분기되는 덕유산을 스친다. 지쳐가는 추색으로 만산은 홍엽이고, 또 은행잎은 나비처럼 분분히 도로 위에 떨어져 내렸다. 길은 가기 위해서 멈춰서지 않는다. 그래서 길은 봄, 여름, 가을이나 겨울에도 늘 멀기에 아름답다.

20081109~20081110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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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0 23:38 2008/11/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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