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3 16:57 : 언덕 위의 고물 書店

유리란 아주 오래 전, 국민학교 6학년인 나에게 있어서는, 오로지 나만 아는 태고의 어느 곳, 서백 창이 유폐된 곳이었다.

현자이자 덕이 많은 자라고 참소되어 그곳에 갇힌 그는 유리(주)로 만든 투명한 옥사에 갇혀 마른 햇빛에 입술이 터지고 피부의 허물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며 지평선이 자욱한 저 멀리 높히 쏫아오른 은나라 주왕의 녹대를 바라보거나 햇볕에 하얗게 들뜬 옥사의 바닥에 산가지를 늘어놓으며,

오늘 내가 죽을 것이냐 아님 살 것이냐를 7년을 하루같이 점치던 곳이다.

문왕은 유리에서 죽음을 앞에 놓고, 산가지를 펼쳐 괘의 단을 달고 순서를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가 아니라 산 것들이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몽롱한 이야기이다.

 

无咎

산 사람들을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믿기에는,

그의 역(주역)은 참혹하며, 삶이란 까딱 잘못하면 발뒷꿈치가 잘려나갈 정도로 위태하며, 피바다라고 노래한다.

음울한 변화의 책을 지은 그는 아비를 살려달라고 온 자신의 큰 아들, 백읍고의 살로 끓인 고기국임을 알고도 모른 척 먹고, 유리에서 풀려난다.

유리에서 살 수 있는 길이란 그토록 처참하고 구역질나는 것이다.

제신(帝辛 : 은 주왕)은 죽여야 한다는 달기를 앞에서 껄껄 웃으며,

그가 현명하다면 어질지 못하고, 어질지 못하면 현명하지 못하다며 그를 풀어준다.

서백(문왕)이 아들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면, 주왕은 현명하고 어질다는 이유로 포락의 형에 처해 지져 죽였을까?

아비와 아들이 유리로 가서 부자가 모두 죽는 것이 옳은지, 어진 것과 현명함을 지키는 것이 옳는 것인지는...

죽음의 저 편을, 살아있는 이 편에서 가름하기 어려운 즉,

산 것은 살기 위하여 능멸도 치욕도 다 버리고, 어짐이나 현명함도 다 버리고 악착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정언적 명법 아래

그는 기어이 살아 자신의 땅으로 돌아간다.

그런 즉 세상에는 살기 위한 땅은 있어도 죽기 위한 땅은 없는 법이나, 박상륭은 문왕의 주역은 <삶의 한 연구>에 불과하다며, 똘중 하나를 다시 유리로 보내, <죽음의 한 연구>를 시작한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위한 독법을 위하여...

주) 어렸던 나는 유리에 갇히다라는 대목을 유리 속에 갇힌 것으로 이해했다

20090813

2009/08/13 16:57에 旅인...face
2009/08/13 16:57 2009/08/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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