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9 11:14 : 언덕 위의 고물 書店

La Bibliotica de Babel


시란 오히려 개념적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사유하거나, 말로 규정할 수 없는 것들, 즉 사랑이며, 자유, 혹은 자신의 가슴 속에 들끓는 것들을 말로 한다. 그리하여 현실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것들을 적당한 시어를 통하여 몽상하며, 사악하기도 한 이 세상에서 몽상이 가지는 효용이란 수줍은 사랑의 밀어에 적당히 섞어 발효시켜 나가는 정도일 것이다. 사실 느끼는 감동에 비하여 그 효용은 하찮으며, 때론 이성적으로 부딪혀야 할 이 세상에 대하여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게 할 뿐이다. 반면에 소설가들은 잿빛 현실에 대한 시선이 누구보다 뚜렷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구원할 의무는 전혀 없으며, 단지 비루하거나 추악한 인간의 마음을 엮어 처절한 비극과 과장된 희극을 선사함으로써 인지세를 높이기만 하면 된다는 작자들이다. 그러니까 비극이던 희극이던 우리가 소설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세상이 지독하게 불합리하고, 살기에 적당치 않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없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데 어떡하란 말인가? 아울러 사상가라는 작자들은 자명한 진리나 귀중한 도덕적 가치로 우리를 이끌기보다, 사람들을 더욱 미혹하게 할 뿐이다. 그리고 스포츠 신문에 난 가십을 읽고서 누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이른바 진리나 진실이라고 불리어지는 것들에 비하여 대화를 이끌어가기에 더욱 유익하며, 천박한 세상에 적당한 것이다. 철학적 경구를 남발하는 행위는 타인의 비난을 초래하거나 아니면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담아 놓은 책이란 대체로 무용하거나, 책장 사이에 깃든 곰팡이들로 해서 천식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리는 대체로 무지에 대하여 정말로 무지하다. 그리고 지식의 효용에 대하여 지나친 찬사를 보내면서도, 대체로 우리는 충동적이며, 습관적이거나 피로에 찌들어 살아갈 뿐, 결코 이지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탈구된 지식이나 생기 잃은 감정들은 황산에 절어 바스러져 내리는 섬유질 사이에 카본과 기름으로 때처럼 끼어 있다. 다라수의 잎에 상감으로 글을 파고 먹을 넣은 불경은 수천년을 가고, 한지로 만든 책은 몇백년의 수명을 기대할 수 있지만, 황산처리를 한 요즘의 책들은 불과 몇십년을 지나지 않아 종이는 바짝 타들어, 바스러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도서관으로 가면 지식이 붕괴되는 그 텁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것은 오래된 카페트의 냄새와 같지만, 먼지처럼 뿌옇고, 어두우며, 약간의 습기로 끈적거리기도 한다. 이런 냄새는 연옥처럼 퇴폐적이기도 하다. 어떤 책은 감당할 수 없는 지식의 부피 때문에 제본이 풀어져 종이장이 낙엽처럼 흐트러져 내리기도 한다. 책에서 떨어져 내린 낱장의 내용은 너무도 단편적이라서, 그를 통하여 무한하고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그려낼 수도 있다. 그녀는 과연 그 입맞춤을 통하여 천국의 계단 그리고 엄숙한 지옥의 문, 어디를 선택했으며, 과연 그 뒷장에 나올 정사에서 만족했을까 등등의. 그러니 두꺼운 책과 떨어져 나온 낱장, 둘의 무게의 차이는 확연하되, 어디가 더 가치가 있을 지는 아무도 계산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의 사서가 되고 싶다. 죽은 지식의 납골당의 관리인이 되어 서가의 어두운 구석을 서성이는 망령들을 통하여, 점토판보다 오래된 지식의 역사에 대하여 듣고 싶은지도 모른다. 언어가 뒤틀어지기 시작한 바벨의 시대 그 이전, 지식이란 나무막대기를 부벼 불을 피우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부터, 벽에 지식이 아름답게 채색됨으로써 그 신비를 발하거나 점토판에 설형문자로 준엄한 형법으로 아로새겨지던 지점을 지나 지식이 대량화되다 못해, 허무한 공간 속에 떠돌다가 익명의 모니터 위에 이슬처럼 맺히는 이 시점까지의 권태로운 지식의 역사를 듣고 싶다. 지식이란 무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찬란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생각은, 신이란 불가지한 존재이기 때문에 믿을 수 밖에 없다는 중세의 파라독시컬한 수사학과 많은 점에서 닮아 있다.

도서관의 사서가 된다는 것이 책을 많이 읽고 싶다는 욕구 때문은 아니다. 어쩌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단지 최종적이거나 원초적인 비밀을 알고 싶다는 욕구, 그를 통하여 날거나 아니면 죽은 해골 속에 깃든 은밀한 추억을 불러일으켜 세우거나, 아카샤에 다가가는 것, 아니면 기표만 오글거리는 죽음의 기의를 알아냄으로써 생명의 원질을 알아내는 것, 그런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나 이러한 비밀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 모여 있는 도서실의 첫 번째 서가에서 마지막 서가의 마지막 칸에 놓인 마지막 책의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훑어보아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러한 원초적 비밀은 분명히 한낱 섬유질과 잉크의 결합 속에 깃들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神)과 나(我)라는 두 극단 사이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 사서는 방대한 책과 문서와 파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책이 풍기는 묵시적인 냄새와 차디찬 대리석의 바닥을 울리는 침묵 속에 앉아 지식의 망령들의 가라앉은 먼지 내음을 맡으며, 도서카드에 스탬프를 찍고 반납할 날짜를 기록하면서 무망의 가운데로 서서히 내려앉고, 마침내 서가 안쪽 깊숙한 곳에서 젊은 남녀가 키들거리거나 애무를 하는 모습을 보며 스쳐지날 때, 불현듯 비밀은 없고 어제처럼 오늘을 또 살아가는 것만이 모든 비밀의 알파이자 오메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2006/09/29 11:14에 旅인...face
2006/09/29 11:14 2006/09/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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