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0/17 13:29 : 그리고 낯선 어느 곳에

황동규 씨의 시(글)는 늘 읽기가 좋습니다. 읽는 사람에게 적절한 이해의 문고리를 놓아두고, 때론 깔깔하기도 하고 쌉쌀한 듯한 언어를 섞어 돈까스 옆에 보리밥을 퍼 놓은 듯하고 가을날 어스름때 뚝방 길을 걷는 듯 하기도 합니다.

정선은 젊은 시절, 여행에 대한 광기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여백이었습니다. 설악산이 그 명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남겨둔 여백이었다면, 정선은 그냥 나의 머리 속에 텅빈 공간이었습니다.

회사에 들어와 가 보지 못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 어느 봄날 행장을 꾸려 정선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제천에서 구절리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저는 탄광촌을 처음 보았습니다. 마을 위로 까만 먼지들이 흘러다니고, 아이들은 계곡을 향하여 기울어진 마을에서 부시시한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개울에는 먹물이 흐르고 잿빛 위에 흐르는 삶의 곤함을 아주 가벼운 감상으로 보았습니다.

기차는 증산에서 루프식으로 언덕을 올라 강을 건너고 절벽 아래로는 태백으로 흐르는 강물에 정선에서 내려오는 녹색조의 강물과 탄광촌에서 흐르는 석탄물이 만나 흑백의 뚜렷한 선분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산업사회의 잿빛과 오지를 지나는 청정함이 조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정선읍은 아우라지의 강물에 씻기어 갈 듯 초라한 모습으로 봄날의 햇빛 속에 한가롭게 졸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소금강을 가기 위하여 화암약수터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화암에서는 정선 소금강이 어딘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경치가 좋은 곳은 광대골이라고 했습니다.

화암약수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광대골로 갔습니다. 광대골 안에는 무당개구리가 가득했고 우리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길을 돌아나왔습니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개구리 있는 곳에 뱀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처절하게 절감했습니다. 왠놈의 뱀들이 그리 많은 지...

광대골을 나와 우리는 지나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때 눈 앞에 좀 폭이 넓은 개울물과 석벽이 보였습니다. 멀리서 뻐꾸기가 울었고 한가함을 갑자기 느꼈습니다.

버스가 왔고 우리는 정선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후일에 나는 광대골을 나와 우리가 서 있던 곳이 몰운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북에서 길을 내려와 화암으로 가는 소금강의 초입에 있는 몰운대는 물론 높아져 가는 석벽으로 구름이 사라지는 곳이지만, 방향을 바꿔 정선에서 사북으로 가는 길의 몰운대는 2차선 하늘이 잠시 공터를 만드는 곳, 구름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제 사북과 고한을 흐르는 강물은 잿빛을 잃고,
자~ 돈내고 돈먹기의 환락의 길목으로 바뀌었지만...

추신: 정선은 윤흥준 교수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의 편명으로 답사기를 지은 곳입니다. 나는 이 멋진 편명에 반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기(네다바이)를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수령의 우리 말 번역이라는 것에 흠칫 놀랐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 이은 가장 멋진 번역어라고 생각합니다.

2002/10/17 13:29에 旅인...face
2002/10/17 13:29 2002/10/17 13:29
Trackback URL : http://yeeryu.com/trackback/842
◀ open adayof... Homo-Babiens ▶▶ close thedayof... Homo-Babie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