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1/25 16:28 : 걸상 위의 녹슨 공책

혹시 무지개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빌어먹을 도시에서 보기란 기적이지.
본다고 하더라도 라기에는......

아버지가 물으셨다.
거기에는 무엇 때문에 가느냐?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놀러요!

아버지께서는 삶의 가치와 행위의 목적에 대하여 늘 묻곤 했지만, 자식인 나는 어떤 것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대답은 목적어가 없이 타동사만 존재하는 행위로, 아무 것이나 하면서 놀거나, 아무 것도 안하면서 지내겠다는 무위의 막연함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런 목적이나 생각없이 산사로 올라갔다.

누군가 산사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놀았다'라는 지금의 어감 상으로는 상당히 불순한 답을 할 수 밖에 없으며, 무엇을 하면서 놀았냐고 묻는다면 '그냥 놀았다'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마이산에서 시작한다는 섬진강의 물길을 본 그 새벽에 보성강이 합류되어 섬진강의 초입을 이루는 압록진수가 흐르는 구례구에서 밤차를 내렸다. 쌍계사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 전에 절에서 지낼 물건을 장만했다. 지리산 연봉의 안개가 걷히는 것을 보며 해장국을 먹었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화개까지 갔고, 화개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쌍계사 앞에서 내렸다.

화개천으로 폭포가 되어 합류하는 쌍계 석문을 보며 절로 올랐다. 7월이지만 경쾌한 개울물 소리 속에 숲길은 차고 습기가 감돌았다. 두개울물이 합류하는 곳에 여인숙이 있었고, 숲길 저 쪽으로 법정 스님이 지내던 암자를 개수한 산장이 있었다. 바람이 불면 길 위로 초록 그림자들이 춤을 췄다. 산사의 매점인 팔각정을 지나 일주문을 들어서자, 솔 숲에는 송진의 차고 매운 내음이 가득했다. 숲이 끝나자 여름 햇빛이 들었고 법종루와 청학루 사이로 난 계단으로 절에 들어섰다.

종무소 앞에서 배낭을 풀고 있던 우리에게 총무스님은 사무실로 들라 했다. 그는 단도직입, 숙식비부터 내라고 손을 벌렸다. 돈을 받아 챙긴 그는 우리의 배낭을 넌지시 내려다 보더니, 이불과 요는 없다 요 놈들아! 라고 말하고는 당했지? 하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올해는 얌전히 공부 좀 할꺼냐?
아뇨! 올해는 무위자연의 경지를 터득키로 했습니다.
한마디로 논다는 이야긴데... 돈 돌려줄테니 속세에서 놀려무나.
꼴보기 싫으시면 국사암에 방을 내 주시죠.
국사암? 왠 땡초가 학생 공부 전문암자로 만들겠다고 공사 중이다. 그래서 학생들도 없고 같이 놀 놈들도 없다.
그럼 그 많던 뱀들은 이사가야 겠네요.
거기 뱀이 많았나?
그럼요, 스님처럼 시주나 받아먹고 도를 터득치 못한 국사암 스님들이 다 뱀이 됐으니까요.
그게 나같은 중놈한테 할 소리냐? 방은 니들이 아무꺼나 골라 들어가라. 청소는 좀 하고... 그런데 예불은 드릴 꺼지?
예불이요...? 못드린다고는 할 수 없고 심심하면 한 번...
나쁜 놈들 어서 꺼져라.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이불이 없다는 것과 기독교인으로써 어떻게 예불을 들일 수 있느냐를 고민했다.

공양 때가 되었는데 점심들은 했느냐? 하는 스님의 소리에 친구들은 아뇨! 먹었을 리가 있습니까? 하고 펄쩍 뛰었다.

그럴 줄 알고 대처에서 손님 올 것이라고 보살님께 얘기해 뒀다.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은 데 그냥 떼우지 그랬어? 하고 종무소를 나서며 내가 말했다.

야! 스님들이 얼마나 박정한 데, 먹었다고 하면 아 그랬냐 하고 그 즉시 국물도 없어. 아뭇 것도 없는 두메산골에서 저녁 공양까지 꼴딱 굶어야 하니까 속가의 체면일랑은 걷어치우는 것이 좋아. 하고 말했다.

설선당 옆 식당 안에는 몇몇 행자 스님과 보살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보살 한분이 오늘 대처에서 왔다 하니 한번 봐 준다 하고 식사를 내왔다.

점심은 스텐그릇에 고봉으로 나왔다. 한공기의 밥조차 먹지 못하던 나에게 그 양은 거의 이틀치였기에 좀 덜어달라고 했다.

대처에 산다고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못먹느냐며, 절밥은 기름끼가 없어 이틀만 지나도 허기가 질 것이라고 보살님이 말했다.

그 날 저녁 어느 스님 방에서 이불을 훔쳐오고 난 후, 그 이틀 째 날부터 위장병은 사라졌다. 고봉으로 다 먹고 난 후 한식경도 안돼 다시 찾아오는 허기를 반갑게 맞이하곤 했다.

새벽 예불이 끝난 후, 시작되는 아침 공양을 받으러 눈꼽을 떨어내며 식당으로 가 눈을 절반쯤 감고 한그릇을 다 비운 후 방으로 돌아와 한시간 쯤 더 잤다. 그 후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켜면, 뱃 속에서 폭!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른한 허기가 몰려왔다.

그 모든 날들이 그러했듯 불일폭포에서 흘러내린 개울이 절 옆 작은 폭포로 소를 이루는 곳에서 이른바 소세를 했다. 세수를 하지 않고 소세를 한 이유는 한마디로 개울물이 드럽게 찼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히 그 차가운 물이 우리의 목이나 팔뚝에 자극을 주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래서 안면근육에 자극을 주는 정도의 소세의 짜릿함으로 허기를 지우곤 했다.

절에 오른 다음 다음날부터 때 늦은 장마가 시작되었다.

적묵당의 툇마루에 앉으면 풀 숲 사이로 피어난 골안개와 수분들로 산과 나무들이 하얗게 지워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론 어디엔가 비가 잎새들을 두드리는 싸아 싸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새소리는 사라지고 대웅전에 깃든 비둘기의 구구소리도 눅어들었다. 바람도 죽은 듯 풍경소리도 그쳤고, 목탁소리조차 습기를 머금어 무겁게 들렸다.

낮이면 그런대로 견딜만 했으나 밤이 되면 한기가 몰려왔다. 더 이상 냉골에서 잠을 청하기 어려워 절 주변을 돌며 태울만한 물건들을 찾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후 방의 삼십촉 백열등 불빛 아래서 구들에 불을 지폈다.

요사채의 구들은 높고 깊었다.

하염없이 불을 피워도 방은 따스해지지 않았다. 습기를 머금은 탈 것들은 짙은 연기를 뿜어댔지만 나무가 타는 냄새는 깊고 향기로왔다. 불이 타닥거리면 숲 저쪽에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차고 명료하게 울렸다.

한 두시간 불을 지피고 난 후 방 안에 들어서면 방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오래된 냄새가 방안에 감돌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오래되었으나 늙지 않았고, 만향이 스며들어 오히려 처녀의 속살내음 같기도 했다.

아침이면 방의 바깥 벽에 하늘소, 풍뎅이 등의 풀벌레들이 까맣게 붙어있었다. 밤의 추위 속에서 생명의 온기를 찾아 왔으리라. 벌레들은 온몸을 벽에 딱 붙이고 꼼짝도 않고 방에서 새어나오는 온기를 흡수하며 밤을 세웠으리라.

우리는 벌레들을 벽에서 떼어내어 아로나민 통 속에 담아 라이터 불로 통을 데웠다. 시간이 흐르면 벌레들은 통 속에서 사그락거리며 움직이긴 하여도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방 안의 온기가 놈들의 몸 속에 스미면 방 안을 날아다니거나, 문 밖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나는 불과 며칠 만에 산사의 무위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서울에 있는 여자친구가 더 이상 그립지 않았다. 그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죄책감에 편지라도 쓰려고 했다. 연필을 들고 적묵당의 장짓문을 열면, 그리움도 안개처럼 하얗게 되고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었다.

밥을 먹고, 허기를 느끼며, 팔각정으로 가서 꽁치찌개로 모자란 영양분을 보충하던지, 구들에 불을 피우거나, 해우소에서 엉덩이를 풀고 하늘을 보거나 때론 절 뒤의 언덕에서 절을 내려다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책도 읽지 않았고 아뭇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생각없이 사는 것 속으로 많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랑도 우정도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잔잔한 변화가 눈 앞에 펼쳐졌고, 그 모든 것을 가만히 보았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내 인생가치라든가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없다는 것을 막연하게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생명이 있을 뿐이며, 나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찾기에는 숲은 너무나 숙연했고 안개는 몽상처럼 스쳐지났으며, 물소리는 차고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하찮은 하나로 내가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큰 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낮이 빛을 잃었고 바람조차 숨을 죽였다. 어둠이 더 깊어지더니 와우와우 함성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 낮인데도 대웅전 뜰 앞에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개울소리같았다. 양쪽 개울로 우당땅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휩싸여 절이 표류하는 것 같았다.

방 안에서 하늘을 보다가 담배가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의 만류에도 담배를 사기 위하여 절 아래 마을로 향했다.

절을 벗어나 좀 가자 이미 길은 보이지 않았다. 계곡의 물이 불어 어디가 개울이고 길인지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물은 이미 발목에까지 차기 시작했고 숲 속의 어둠은 더 깊었다.

내려갈 것인지 돌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며 한동안 솔 숲 속에 서 있었다.

땅 밑에서 찍하고 한 줄기 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이 곳 저 곳에서 찌익 찍 물이 뿜어져 나왔다.

감당할 수 없이 흘러드는 물들로 숨가쁜 나무 뿌리들이 헐떡이며 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대지는 살아있었고 영험했다. 그리고 추수(秋水)의 의미를 이해했다.

더 이상 마을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물을 뿜어대던 나무들도 감당할 수 없는 빗줄기에 가지를 드리웠는지 갑자기 빗소리는 잦아들었다. 흘러넘치는 물은 사방에서 내 쪽으로 압도해 왔다. 이미 물은 정강이까지 올라왔고 겁에 질린 나는 황급히 절로 향했다.

이틀인가 지나자 비는 그치고 해가 들기 시작했다.

적묵당의 툇마루에 앉아 절과 골이 여름 햇빛에 자신들의 몸을 말리는 것을 보았다. 골의 깊은 곳에 부분적으로 안개들이 엉켜있다가 햇빛이 강해지면 하나씩 사라졌다. 그리고 나무가지들이 조용한 바람에 잎새를 흔들며 몸 기지개를 켜는 것들도 보였다.

하루가 더 지나자 숲의 모든 소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개울물도 숨소리를 고르고 돌돌거리기 시작하더니 매미와 풀벌레 소리가 한 여름을 향해 함성처럼 몰려왔다. 풀벌레의 악다구니같은 함성에도 산사의 한 낮은 적요했고 간혹 풍경이 땡겅 울기만 할 뿐 목탁소리는 산사의 적막을 더 깊게 했다.

적묵당의 방문을 활짝 열고 툇마루에 앉아 햇빛이 내 몸 속 깊이 스미는 것을 즐겼다.

대웅전에서 비둘기가 마른 햇빛을 즐기는 지 구구하고 울었다.

적묵당의 토담은 이미 다 말라 색이 뽀얗게 올랐다.

나는 그 곳에 담쟁이가 있는 것을 처음 본 듯 했다. 담쟁이의 줄기가 그 여리디 여린 초록 속살로 큰 잎들을 매달고 토담을 힘겹게 올라왔다는 것이 애처롭고 정겨웠다.

꽤 오랫동안 그것을 보았으리라.

순간 담쟁이 잎 끝에 빛이 뭉쳤다가 반짝하고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시간 속으로 들어섰다.

한 줌의 바람이었겠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갈증을 참을 수 없어 요사채 뒤에 있는 물확으로 갔다.

뒷 뜰은 여름의 햇빛이 모자란 듯 축축했고, 잡초들에 맺힌 물방을은 수풀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반짝거렸다. 매미들은 인적에 놀란듯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철분이 오른 새까만 물확의 언저리에 앉아있던 청개구리는 아주 건방진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놈이 바라보도록 가만히 있었다. 놈은 한동안 나를 보다가 더 이상 흥미를 잃었는 지 물확 안으로 퐁당 뛰어들었다. 멋지게 헤엄을 쳐 맞은 편 턱에 올라와 나를 한 번 돌아보고는 숲 속으로 펄쩍 뛰어 사라졌다.

개구리가 헤엄친 수조의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셨다.

차고 감미로왔다.

그리고 절정이 길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은 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순간은 순간 속에서 영원히 머물도록 해야 함을 갈증 끝에 알았다.

그 날 저녁, 팔각정에서 꽁치찌게를 끓여서 허기를 때우며 막걸리를 먹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반딧불이를 보았다.

신령스런 놈들의 움직임에 누구도 반딧불이를 잡고자 하지 않았다.

반딧불이들은 무엇을 찾아가는 지 계곡을 따라 서서히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내 옆에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불현듯 저 먼 곳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놈들이 날아가는 모습은 수도승의 걸음처럼 숙연했다. 우리는 놈들이 악보의 리듬처럼 흘러가는 것을 뒷짐을 지고 따라갔다. 우리가 자신들을 따라가는 것을 알았는 지 계곡의 끝에서 한차례 빛들로 뭉쳤다가 흐트러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날이 맑아진 후 우리는 불일암에 가보거나 거의 폐허가 되어버린 국사암의 뜰에 붕어가 썩어가는 듯한 뱀 비린내를 맡거나 차디찬 계곡물에 몸을 씻거나, 전신환을 찾으러 화개로 나가 술을 마시거나, 나한전을 둘러보거나 명부전인지 삼신각인지에서 탱화를 보거나 했다.

그렇게 여름은 가고 있었다.

종무소 옆에 심어진 치자의 향기가 점차 짙어지면서 아직 팔월이 반도 지나지 않았는 데 산사에는 가을이 오는 것 같았다.

친구들을 산사에 남겨두고 나 홀로 서울로 돌아왔고, 돌아온 지 삼일도 안되어 공기밥 한 그릇 이상을 먹을 수 없었다.

여자친구에게 귀경신고를 하기 위하여 나는 시내로 나갔다.

서울은 팔월의 더위에 지쳐있었고 퇴약볕 아래로 수 많은 사람들이 소음과 먼지 속을 바삐 걸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플라타너스의 그늘 속으로 햇빛을 피해다니며 다방 안으로 들어설 때, 왜 이토록 일찍 하산을 했지? 하고 자조 섞인 질문을 하고 있었다.

왜 편지 안했어?
우체국이 너무 멀어서...
뭐 했는 데?
아무 것도...
지리산은 올라가 봤어?
바빠서 갈 시간이 없었어...
뭘 했길래?
그냥...

내가 보고 싶진 않았어?
아니 무지하게 보고 싶었어.

다음에도 절에 갈꺼야?
그래 가야지. 아마 그땐 하얀 눈이 내리겠지. 산에서 내리는 눈은 깊은 계곡 속으로 하염없이 떨어질테지. 그러면 콧구멍이 시커멓게 되도록 장작을 땔꺼야. 연기가 하얀 눈 속으로 스미겠지...

그리고 나는 여자 친구의 손을 꼬옥 잡았다.

여자 친구가 물었다.
절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2005/01/25 16:28에 旅인...face
2005/01/25 16:28 2005/01/2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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