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이나 갱지 위에 써 놓았던 이야기나 辭, 賦, 그런 것들. 오랫동안 읽지 않은 탓에 글자가 녹이 슬고 얼개는 들떠 도무지 문장이 되지 않은, 그래서 그림이 되버린 낱말들, 상형의 질감으로…

섬 그늘에서…10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결에 게으른 바다 위로 파도가 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깨어났다. 마당으로 달빛이 내려왔다. 물비늘조차 없는 게으른…

섬 그늘에서…09

이혼하자는 아내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편안했다. 오래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담담할 것이었다. 아내의 요청에 그러자고 했다. 하지만 부탁이 있다고 말했다. “한…

섬 그늘에서…08

아잉을 보내고 살 수 있을까? 그냥 그냥 오십을 살아왔으니, 십년, 이십년, 삼십년을 어찌저찌 살 것이다. 그런데 아잉을 보내고 정말 살…

섬 그늘에서…05

기침과 함께 깨어나자 깜깜했다. 묵은 곰팡이 냄새와 같은 것이 났다. 스위치를 찾았으나,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누가 내 곁에…

섬 그늘에서…04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삼남에 내리는 폭설로 길들이 끊어졌고, 노인네만 사는 동네에선 닭장 높이로 쌓인 눈을 치우지 못하여 닭들이 목을 날개…

섬 그늘에서…03

그 해 겨울, 상사의 권고에 따라 간신히 다니던 회사에서 떨려났다. 언젠가 쫓겨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직을 하니 아무런 대책이…

섬 그늘에서…02

바다의 아침은 고요하고 조금 서글프다. 그녀는 바다를 건너와 남해의 조그만 섬에서 살았다. 뭍으로 나와서 나를 만났고, 넓은 바다를 건너 고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