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이나 갱지 위에 써 놓았던 이야기나 辭, 賦, 그런 것들. 오랫동안 읽지 않은 탓에 글자가 녹이 슬고 얼개는 들떠 도무지 문장이 되지 않은, 그래서 그림이 되버린 낱말들, 상형의 질감으로…

섬 그늘에서…01

건너편 섬의 그늘은 좁은 여울목을 건너와 툇마루까지 와 닿는 것만 같다.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집 앞 도로 건너편에 가파른 언덕이…

무풍교 위에서

통도사 무풍교 금각사를 읽다가 벽암록 63칙 남천참묘의 해석을 보자 불현듯 통도사가 생각났다. 아마 남천참묘의 구절보다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녹슨 시절 -03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고 놈은 늘 나를 싸부라고 불렀다. 놈은 나를 따라다니며 이러저런 것을 묻곤 했다. "싸부, 너 수레바퀴 밑에서…

녹슨 시절 -02

필름 2.0의 기사처럼 놈에게는 눈물이 많았다. 놈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법도 몰랐다. 놈은 훌쩍이며 교실의 구석에서 울었고,…

녹슨 시절 -01

친구 규동은 한때 잘 나가던 영화기획사 사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른다. 마지막으로 접한 소식은 중국과의 영화 합작 MOU체결을 위하여…

녹슨 시절 -20

지리한 74년의 여름방학은 끝났다. 북창인데다가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서늘한 교실로 다시 모였을 때, 우리 개떼 중 병신이 3명이었다. 오른손에 깁스를…

녹슨 시절 -19

녹슨 시절--○○은 우울한 시절의 빗나간 개인사일 뿐이다. 그리고 남들은 태어난 해 없이 닭띠, 원숭이띠라고 불리는 데, 왜 58년생만 유독 <오팔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