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5 21:09 : 무너진 도서관에서

술이편은 공자의 학문에 대한 생각과 가르침의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첫머리를 장식하는 술이부작은 공자께서 노가리는 풀었으되, 글을 쓰지는 않았다술이-01 : 述而不作 는 뜻으로 이해했었다. <집주>에 보면, '술(述)이란 오래 전에 이미 지어진 것을 전하는 것이고 작(作)은 만들어 시작하는 것이다'述, 傳舊已. 作, 卽創始也. 라고 한다. 이후 공자께서 '시경과 상서를 다이제스트화(刪)하고, 예악을 바로(定)하고, 주역의 이해를 돕(贊)고, 춘추를 개보수(修)한 것이, 다 선왕의 오래된 일을 전한 것이지 일찍이 지은 바는 없다'孔子刪詩書, 定禮樂, 贊周易, 修春秋, 皆傳先王之舊, 而未嘗有所作. 고 한다.

공자가 선왕의 일들을 전했을 뿐, 새로 만든 것이 없다고 주를 달면서도, 정작 정주계 일당들은 주자학이라는 것을 만든다. 주자학은 신유학(Neo-Confusianism)으로, 공자가 언급한 바 없는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철학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공야장편 0513) → 자공은 공자에게서 性이니 天道니 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들은 바 없다고 한다 을 지어낸다. 이는 유학 자체가 노장, 불교와 같은 본체론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사변을 결하고 있기에 이론적으로 열세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런데 理와 氣라는 것, 無極이나 太極이라는 것들은 유학의 내재적인 개념이 아니다.

공자는 내가 몇년을 더 살게 되어 죽을 때까지 역<易;주역>을 배울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큰 허물은 없을 것이다술이-16 : 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라고 한다. 학자들은 이 말씀이 공자의 말년에 이루어졌으리라 생각한다. 대체적으로 70세 전후의 이바구로, '오십까지 산다면'으로 풀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문의 졸(卆: 卒의 본자)을 오십(五十)으로 오독했다고 보고 있다 이 구절에서 공자가 주역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가, 늙어서 좀 관심이 생겼다고 유추할 수 있다. 또 논어 전편에서 이 구절말고는 주역에 대한 언급주역을 묶은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졌다(韋編三絶)는 이야기도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에 나오는 글일 뿐이다. 공자가 지었다는 십익(十翼: 彖傳 上·下, 象傳 上·下, 繫辭傳 上·下, 文言傳, 說卦傳, 序卦傳, 雜家傳)도 공자가 지은 것이 아니라 전국시대에서 한나라 초까지의 익명의 저작물들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주자학의 학자들은 공자가 지은 것으로 알았기에 주역의 이해를 도왔다(贊)고 한다 이 없다. 그가 가르친 육예도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로 주역과 관련이 없고, 공자가 읽은 주역 또한 현재와 같지 않고 점사[각주 참조]만 있는 것이다. 점사(占辭)를 읽고, 한 사람이 십익을 달 정도로 고도의 사변체계를 이룩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니 주자학의 본체론의 근간이 되는 이(理)니 기(氣)니 태극이무극(太極而無極)이니 하는 관념은 원시유가 내에는 업었다. 주자학의 형이상학은 그 뿌리를 오히려 음양가 또는 노장계열 그리고 후일 진한지제에 발전된 역학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술이부작 즉, 공자의 학문 방법은 즉 고대의 문물을 해석하는 것이지, 서양철학이나 주자학처럼 새롭고 보편적인 이론을 안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옛 것을 믿고 좋아하다술이-01 : 信而好古 는 우리 실학의 배움을 닦고 옛 것을 좋아하는 것은 실제의 일에서 옳음을 구한다(修學好古 實事求是)와 일통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사변보다, 역사 속에서 방정한 문화를 찾고, 왜 그때 그들이 함포고복을 하며 살 수 있었으며, 변란이 있었다면 왜 그러했는가를 살펴보는 것(蘊古)을 통하여 새롭게 치도를 밝혀가는 방향(知新)을 잡아갔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이 철학을 중시한 반면, 동양은 역사(史書)를 중시한 것이다.

그러니 공자의 학문 방식은 정주계열의 성리학과는 다르다. 공자와 같은 학문방식, 즉 述을 채택한 자들은 훈고학이나 고증학을 한 경학 학자, 다산과 같은 사람들이다.

송대의 주자학은 중국 내 발전된 '자연과학과 천문학'주자학의 개조들은 유명한 천체물리학자들이다. 주자는 주자학을 완상하기 전부터 자연과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주자학을 완성한 후, 만년에는 자연과학에 심취하여 초사집주(楚辭集注)와 제자가 완성한 서집전(書集傳)에 자연과학에 대한 단편들이 산재한다. 선배 장횡거는 다수의 과학이론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당시의 학자로 격물(Science)에 대한 지식없이 학계에서 헛기침을 할 수 없었다. 이전의 심괄의 몽계필담은 송대의 과학 전반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데, 방대하기가 현대의 분과학의 범위에 달하고 있다. 주자학은 이렇게 난숙한 송대의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을 수용하고, 유교의 대척점에 있는 불교, 도교의 형이상학적인 사유체계에 대응키 위한 필요성에서 전개되었다면, 우리의 성리학은 그러한 내재적인 요구보다 조광조의 소학을 중심으로 한 윤리 도덕적인 측면이 강조된 결과, 사단칠정을 중심으로한 이기론에 치중되며, '인간의 감정이 이발(理發)이냐 기발(氣發)이냐?'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송시열의 기년상이 가하다 아니다의 뭣도 아닌 예송논쟁의 예교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이발기발을 떠나 공소하면서도 소모적인 씨발(씨發: 에이 씨~ 이게 뭐야?)에 해당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 학문의 방법 또한 술이부작이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술이진작(述而進作)의 방법을 쓰고 있다. 술이진작이란 제반 관련 학술서적이나 문서를 방대하게 참고하되, 이런 텍스트를 비평적으로 참고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펼쳐나가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의 술이부작은 '베끼되 논문을 쓰진 않는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사람의 저작을 홀랑 베껴먹거나, 제자의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여 대학교수는 물론, 국회의원, 장관이 된다. 게다가 더욱 환상적인 사례는 '노가리는 풀었으되, 사실은 아니다'의 주인공, 황우석이 있다.

대한민국은 정말로 정말로 대단한 나라다.

공자는 나는 IQ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옛 것을 좋아하여 잽싸게 그를 쫓는 놈일 뿐이다.술이-19 : 我非生而知之者, 好古, 敏以求之者也.고 한다.집주에 보면, 나면서부터 안다는 것은 기질이 맑고 밝으며, 뜻과 이치가 밝고 뛰어나 배움을 기다리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生而知之者, 氣質淸明, 義理昭著, 不待學而知也.)라고 되어 있는 바, 머리가 뛰어나다라고 보면 되겠다 왜 그는 옛 것을 좋아했는가? 왜 소크라테스처럼 보편타당한 진리를 추구하거나, 석가모니처럼 깨달음이나, 예수처럼 신의 진리로 부터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찾지 않고, 사문(斯文: 주나라와 멀리는 요순시대의 문화)을 추구했는가? 그는 되지도 않는 헷또를 굴리기보다, 문왕과 주공과 같은 성인이 이룩했고, 실존했던 문화로부터 천하의 만민이 편안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모범답안을 찾고자 했다.

"나는 IQ가 ...."(我非生而知之者)의 본 뜻은 "나는 나면서 아는 자가 아니다."라는 뜻이지만, 나면서 안다(生而知之)는 것은 "배우지 않고도 생득할 수 있는 선험적인 지식이나, 관념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선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학문에 필요한 것은 머리가 좋은 것보다, 배우려는 의지와 태도가 훨씬 중요한 것이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양적인 사고 속에는 관념적, 이론적 지식, 직선사관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추구보다, 선왕의 치도를 궁구하고, 순환하는 계절 속에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옳은 것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기에 급진적이기 보다 점진적이다. 또한 인과론적이기 보다 세계와 시간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갈 것인가 하는 관계론적인 세계관을 이루게 된다.

게다가 공자는 '괴이함, 폭력, 난잡한 것, 귀신의 조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술이-20 : 子不語 怪, 力, 亂, 神고 한다. 이는 현대에 들어 말초적인 것으로 상업화해감에 따라 얼마나 우리들의 문화가 타락해나가고 있는가를 미리 경고한 셈이 된다.

외국어에 대해서 말한다면, 공자께서는 시(시경)와 서(상서) 그리고 의식의 집전은 모두 노나라 말이 아닌 주나라 말을 썼다술이-17 : 子所雅言, 詩·書·執禮, 皆雅言也고 한다. 아언(雅言)은 노나라 말에 대하여 관화(官話)인 주나라 말을 일컫는다. 공자 당시에는 영토가 광대하여 지방마다 방언(언어)이 크게 다르고, 육국문자(六國文字)라고 하여 다양한 문자를 갖고 있었던 만큼, 아언이란 중세유럽의 라틴어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말을 보면, 詩의 맛은 결국 그 시가 쓰여진 언어로 읽어야 맛이고, 상서와 같은 고대의 문서는 히브리나 희랍어로 읽어야 본 뜻이 명확해지고, 의전 행사에는 라틴어와 같은 말을 사용해야 권위가 살아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20091115

▶ 원문보기 : 논어07 述而

<각주 : 주역의 겸괘의 예>

地山謙

謙; 亨, 君子有終. 
彖曰: 謙, 亨, 天道下濟而光明, 地道卑而上行.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謙尊而光, 卑而不可踰, 君子之終也.
象曰: 地中有山, 謙; 君子以裒多益寡, 稱物平施.
初六: 謙謙君子, 用涉大川, 吉. 
象曰: 謙謙君子, 卑以自牧也.
六二: 鳴謙, 貞吉. 
象曰: 鳴謙貞吉, 中心得也.
九三: 勞謙君子, 有終吉. 
象曰: 勞謙君子, 萬民服也.
六四: 無不利, 撝謙. 
象曰: 無不利, 撝謙; 不違則也.
六五: 不富, 以其鄰, 利用侵伐, 無不利. 
象曰: 利用侵伐, 征不服也.
上六: 鳴謙, 利用行師, 征邑國. 
象曰: 鳴謙, 志未得也. 可用行師, 征邑國也.

빨간글자는 원래의 주역이고, 까만글자는 후대의 십익이 더해져 만들어진 글이다. 이 점사를 해석하면 이렇다.

겸손하면 형통하니, 군자의 길에 마침이 있으리라.
겸손하고 겸손하니, 큰 내를 건너도 길하리라.
겸손함이 널리 퍼지니, 바르고 길하리라.
공로가 있음에도 겸손한 군자로다, 마침이 있어 길하리라.
겸손을 베품에 있어,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
부유하지 않고, 그 이웃으로, 다른 곳을 정벌하여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겸손함이 널리 퍼지니, 군대를 움직여서, 작은 나라를 정벌한다.

2009/11/15 21:09에 旅인...face
2009/11/15 21:09 2009/11/15 21:09
Trackback URL : http://yeeryu.com/trackback/792
◀ open adayof... Homo-Babiens ▶▶ close thedayof... Homo-Babie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