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책 표지에 진서로 쓰인 黑山은 흑산이라기 보다 쿠로야마로 읽혀졌다. 흑산이라는 지명이 어째 우리 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가믈 현(玄)은 아득하기는 하나 뭔가 보이지만, 저 검은 흑(黑)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엄혹한 검음으로 인해 왠지 왜색이 느껴진다.

그래서 정약전은 가믈 현을 두개 겹쳐놓은 이에 자(玆)를 검을 자로 새겨 흑산을 자산이라 하며 자신이 유배지에서 지은 어류도감을 자산어보라고 했는지 모른다. 참고로 한 때 현산어보가 맞느냐 자산어보가 맞느냐는 논란도 있었다고 한다.

책을 펼치자, 배와 같은 물건 또한 사람처럼 고된 늙음이 있다는 것을 김훈 선생은 이렇게 쓴다.

목선은 길이 마흔 자에, 폭 여덟 발짜리 황포 돛 두 대를 세웠다. 배가 낡아서 목재의 나이테에 허연 골이 드러났다. 고물 쪽 갑판은 사개가 뒤틀린 자리에 꺾쇠를 박았고, 짓무른 뱃전에 청태가 끼어 있었다.1김훈 장편소설 ‘黑山’ 7쪽에서

흑산이 신유박해를 배경으로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 형제와 그의 조카 사위 황사영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조선말기의 피폐해진 민생 속으로 파고 든 천주교를 이야기했지만, 문제는 천주교가 아니라 민초들의 고난과 관리들의 탐학상 그리고 가난에 찌든 조정과 조국강토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보여주는 사박함이 220년 전(1801년)에 있었던 끔찍한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읽다보면 두미협(斗尾峽: 검단산과 예봉산 사이의 협곡)이라는 곳이 나온다. 지금의 팔당댐의 물이 들어찬 마재(능내)에서 배를 타면 팔당댐과 팔당대교 사이로 좁은 협곡이 있다. 이곳이 바로 두미협이다. 두미란 북두칠성의 말(斗)을 이루고 있는 별 넷 다음의 별 셋의 국자 모양을 이르는 것인가 보다. 팔당대교를 지나면 갑자기 강은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낮아진다. 그래서 두미협을 힘차게 지나온 강물은 바위와 자갈에 부딪히며 흰물보라를 뿜어내기도 한다. 바로 그 밑의 미사리(渼沙里)는 강 바닥의 자갈과 바위, 그리고 모래가 모여 형성된 섬이었다. 조정경기장이 만들어지면서 육지로 연결되고 편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래로 강이 넓어지고 흐름이 조용해지는 곳이 너븐나루, 즉 광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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